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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가파르밧 루팔벽 등반기

4월 15일

아침 6시부터 축구장을 찾아 이슬라마드 시내를 헤집고 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민박집에 돌아와 남강주유소에 근무하는 남강파와 금강전력에서 주로 머무르는 금강파가 나뉘어서 시합을 했다.
식사후 윗분들은 불교유적지와 박물관이 있는 덱실라로 구경을 떠나고 아랫것들은 시내 쇼핑을 나가 지도구입및 트레킹 책을 샀다.
점심은 정부 연락관인 알리 집에 초대 받아가서 대접을 받았다.
그는 97년 원정대때에도 연락관으로 일을해 대장과 형근 주영형을 잘 알고있었다. 올해 32살인데 벌써 네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멍석이 깔린 컴컴한 방에서 그들가족이 정성들여 차린 음식(닭커리,짜파티,달)을 맛나게 먹었다.
여자들의 삶도 보고 싶었는데 탈레반 스타일이라고 꼭 꼭 숨겨두어 나올때 겨우 두건으로 감싼 얼굴과 빼꼼이 보이는 눈만 보고 왔다.
오후엔 기어이 축구장을 찾아 광주거주파와 기타지역파가 동네축구스타일로 죽을둥 살둥 뛰어 훈련부족이라 항상 생각하는 대장님께 큰 기쁨을 흠뻑 주었다. 각각 한골씩 넣고 승부차기 끝에 기타 지역파가 1대0으로 이겼다.
운동효과 기분 모두 좋으나 부상위험이 크다.
주형형 나와 부딪혀 부상,난 골키퍼 보다 무릎이 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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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출국3일째)-블랙데이,이슬라마바드 이틀째

난 뷔폐체질,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가격은 4000원쯤
저녁도 뷔폐, 대신 급이 다르다.
헐리데이 호텔 “음주가무”중 가무가 없다. (최창돈 고문님 쏘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현수가 현지음악에 맞춰 타월 날리기 춤을 만인 앞에서 선보인것. 다들 뒤로 넘어가는줄 알았다.
현지 아줌마들도 뻑간 표정
아줌마들이 현수에게 보이는 사랑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계속 이어지는 현수의 개인기
마침 호텔에서 파키스탄 유력가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역시나
아줌마들 신랑 신부에게 보다 더 관심을 보인다.
어디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생기는법
그 그늘이 병찬형에게 드리워져 안쓰럽지만 어쩌 겠어 나도 돌을 던졌다.
병찬형이 부대장이면서 촬영 이였는데 다시 담을 수 없는 그림들을 너무도 많이 놓쳤다. 캠코더를 들고오지 않아서

회계:현지에서 전화기 구입(왕추가 가져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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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이슬라마바드

5년만에 찾는 이슬라마바드,라호르 공항에서 맡은 파키스탄 내음이
훨씬 살갑게 다가온다.
000년 6월 말에 들어가 8월 중순에 나와서 인지 내 기억속의 파키스탄은 사람들에게 깊게 배인 커리 냄새와 40도가 다반사인 불볕더위로만 남아 있었다.

05년 두번째 찾은 이슬라마바드, 건물이나 사람이나 그들에게 나는 커리냄샌 여전한데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선선해 이 자체만으로도 신선하다.
05시 40분,5시간 20분의 버스이동후 우리 도착한 곳은 서울식당
선발대로 온 창호형의 단골집이다.
여권(女權)이 바닥을 치는 이슬람국가에서 혼자서 삶을 이끌어 가는 자체가 놀랍고 신기하다.
그래서 인지 얼굴에 묻어 나는 “싸남”은 감출수 없다.
여전히 한국에서의 피곤함을 털지 못한 나는 09시 20분 전체회의가 끝나고 방배정이 끝나자 마자 이국의 생경함이나 여행의 설렘도 없이 잠이 들었다.

*전체회의
단장:현지 국가 예의 존중,단체 생활에 있어 주의 해야 할일 언급
최창돈 고문: 팀웍이 좋다
이성원 대장: 1)고용인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해라.
2)대원간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라
대원들 :궁시렁,궁시렁
이렇궁 저렇궁

*.방배정
1.최창돈,류재선
2.이성원,김주형,주우평
3.구형준,김남수,김병찬
4,이현조,김미곤,송형근
5,박상훈,박현수,김창호

*,행정:입산 신청 완료
*,식량:야채구입 완료

이것만은 꼭
이슬람 국가들은 술을 금한다.
많은 대원들이 파키스탄의 경험이 있음에도 우린 방콕에서 부터 비싼 술을 준비 했다.
조니워크 블루,레드,발렌타인,시바스리갈,기타등등
당장 이성원대장님 부터 “괜찮아 괜찮아 그냥 카고백에 넣어 통과하면 되” 전에 기억은 분명 이렇게 쉽게 술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는데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자연스럽게 투시기에 밀어넣었다.
싸그리 빼앗겼다.
방법은 두세병 카고백에 넣어 미끼를 던지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진짜 자연스럽게 쇼핑백에 넣고 투시기 옆을 지나 치는거다.
술이 발견되면 모두가 어수선한데 이틈을 이용하면 그나마 몇병은 살릴수 있다.
종이팩이나,피티병에 들어 있는 술은 코리아 미네랄 워터라 명기하고 나가면 별 문제 없다(2005년 버젼)
그렇게 세병을 제외하고 싸그리 빼앗겼다.
“아이구 아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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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출국

02시 45분 공항에 도착
엄청 밟았나 보다.
차 안에서 잤으면 좀더 편한 잠을 잤을 터인데 휑한 공항에 떨쳐 놓으니 애매하다.
순천에서 가져온 김치 포함하니 짐이 장난이 아니다.
카고백 8개,김치통 11개,아이스박스 3개,안테나 1 어찌어찌해도 50kg 이상 오버 될것 같다.
kg당 32000을 생각하면 이만 저만한 초과 지출이 아니다.
일단 짐을 꾸리고 휴식 05:00
05:55 병미씨가 영만형이 준 식객 8권,고추장 3kg,티소 시계를 가져 왔다.
07:30 비행기 티켓 수령
08:00 철원형이 와서 깔끔하게 진짜 깔끔하게 짐을 보냈다. 오버 차지 없이(우리형 입만 살아 있는게 아니라니까) 동생간다고 수고가 많다.
08:40 인하공전 민식이 왔다.
09:50 보딩패스,떠난다.
14:00 홍콩 도착(한국시간-1:30분 공항대기후 출발)
20:00 (방콕현지시간) 4시간의 공항대기후 파키스탄으로 출발
23:00 파키스탄 라호르 도착

-.전화통화:상욱,학재,기순,작은어머니,현상,현홍,형우,귀옥,현빈,자하,재용
-.가영 절묘하게 시간 맞춰 미국에서 전화옮
-.파키스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벌거벗은 산” 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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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환송식,광주 출발,치과 진료

23시 20분 연맹에서 환송식후 출발했다.
환송때 백미는 대원들 소감 한마디에서 형근이 한마디 “총각 송형근”입니다.
사람은 확실히 타고 나는 끼가 있는가 보다.
어쩜 그리 본능적으로 그런 조어 능력이 발휘된는지

원정대원의 가족,친지,동료 150인 참석 했다.
아마도 근래 자발적으로 모인 최대인원이지 않나 싶다.
22시 도착시간에 겨우 맞춰 도달해서 가는 날까지 동료들에게 미안타

부모님께 큰절 드리고 왔다.
일부러 아버지께 용돈 50,000원을 받아왔다.
아미나이프와 신발을 선물로 드리고 표고버섯을 원정대 식량으로 쓸 요량으로 긁어 모아서 가져와 싱싱한 것은 용욱형과 장민을 나눠 주었다.
부모님은 형과 장민은 쳐다 보지도 않고 같이온 연주만 보시며 이뻐 죽겠다는 표정이다.
“개나 잡아 먹게 어제 오지” 참 미안고 고맙다.

오전엔 연주 아버님 덕에 좋은 의사 만나 빡시게 치과 진료를 받았다.
이빨치료는 겁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게 한다.
며칠전 스케일링을 했음에도 근래들어 아니 2~3년 사이 가장 찐하게 육체적 고통을 맛 보았다.
근 두시간에 걸쳐 치료를 마치신 의사 선생님
“북극원정대에 충치 없게 이 잘 닦으쇼”(낭가파르밧 원정때 충치 없게 이 잘 닦으쇼)

-. 650달러 현금을 가지고 출발
-. 점심 강남회관:백환,정옥,갑웅,용욱형,장민,연주
-.환송 행사 참가:형관,현식,재국,선영,석민,창석,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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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11일

4월 9일
막막함
치워도 치워도 끝이 안보인다.
이렇게 가면 ‘안되는데’,’안되는데’ 하면서도 멍해진다.
일단 접고 카메라 수리를 위해 a/s 센터로, 명동에서는 안되고 역삼동 올림푸스 본점으로 가란다. 이미 문닫았을 시간.

시간에 끌려 다닌다.
항상 좀 미리미리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 하면 될 터인데 그걸 못하고 부랴부랴
잘못 구입한 메모리 스틱 교체하고 저녁을 라면 하나로 때웠다
정리하다 취침
한국 방문후 집에서 자는 딥라마에게 끝까지 미안하다.
좀 깨끗한 방에서 자게 해야 하는데 바램 뿐.

4월 10일
06시 기상
07시 옥이 방문하여 딥을 공항에 바래다 주었다.
:뒷정리
무슨복인지 큰 도움,부담 되는 도움으로 주변 정리를 마칠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파트를 깔끔하게 치워 개운한 마음으로 광주로 내려 갈수 있었다.
더불어 2월과 3월 회사일 결산도 끝!
받은게 많으면 짐 무게도 느는법,이를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터미널까지 편하게 가서 21시 05분 차로 광주행
책을 사려고 영풍문고에 갔다 나오면서 군대시절 소대원을 만났다.
긴가 민가 해서 멀찍이 서 “안태민” 하고 물렀더니 고개를 두리번 거린다 “빙고”
8년만에 만났는데 직장생할 접고 공무원(경찰)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자 친구가 여수에서 올라와 배웅하는 거란다.

:가족
가족관계에 대해 심사
내 핏줄이 그리 중요한 걸까?.
항상 그런걸로 맘을 상했으면서도 표현 안하다가 이번에 말했다.
서로를 아프게 하는걸 뻔히 알면서도 안하면 내가 못 견딜것 같아서
“상민아, 강민이 아파도 삼촌이 넘 보고 싶으니 터미널로 나와라”
“강민이 감기 걸려서 못가게 했어요 그리 아세요,아니면 다녀 가시는 것이”
“언제 볼지 몰라서 그러는데”
“어제 어쩌고~~.오늘은 어쩌고~~”
“됐습니다.”
그래도 우리 상민이 많이 컷다고 전화 한다”삼촌 미안해”
그리고 한마디 “삼촌 사랑해요”